1982 FIFA 월드컵 스페인
1. 개요
1982년 스페인에서 개최된 12번째 FIFA 월드컵. 1982년 6월 13일부터 7월 11일까지 스페인의 15개 도시 17개 경기장에서 열렸다.
이 대회부터 출전국이 '''24개국'''으로 확대되었다. 24개국 체제는 1994 FIFA 월드컵 미국까지 4개 대회 동안 유지되었다. 그리고 조별 예선이 숫자로 표기된 마지막 대회. 다음 대회인 1986 FIFA 월드컵 멕시코부터 A조, B조 식의 알파벳으로 바뀐다.
경기진행방식은 기존의 2차 풀리그 제도를 유지하여 1라운드에서 4개팀 6개조 풀리그를 거쳐 각조 2위까지 12개 팀이 상위 라운드로 진출, 3개팀 4개조로 나뉘어 풀리그를 거쳐 각 조 1위가 4강에 진출하는 방식을 채용했다. 이 월드컵에서만 유일하게 적용된 방식으로, 다음 대회부터는 1라운드에서 16개 팀을 선발하여 결선 토너먼트를 치르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이 대회 우승팀은 이탈리아. 1934 FIFA 월드컵 이탈리아, 1938 FIFA 월드컵 프랑스까지 2연패 이후로 '''44년 만에''' 세 번째 우승을 한 것이다. 그렇기에 이탈리아 국민으로서는 더없이 감격적이었던 우승. 그 속에는 이 대회 득점왕이자 골든볼 수상자 파올로 로시가 브라질과의 2차 리그부터 결승전 때까지 선보인 독보적 대활약이 있었다.
한국에서는 1982년 6월 16일부터 7월 14일까지 KBS에서 매일 밤 10시에 녹화 방영하였으며, MBC에서도 같은 기간 1시간 가량의 경기 하이라이트를 방영했다.#
2. 지역예선
출전국 확대 조치에 따라 그동안 1장씩만 주어졌던 북중미, 아프리카, 아시아/오세아니아에도 출전권이 2장씩으로 확대되었다. 전 대회 우승국 아르헨티나와 개최국 스페인은 자동으로 진출이 확정되었고, 그외의 22장의 티켓은 다음과 같이 배분되었다.
아시아/오세아니아 지역예선에 피지(남태평양 국가)가 첫 참가하고 중화인민공화국이 FIFA와 아시아축구협회에 재가입하여 월드컵 지역예선에 복귀하였다. 중국은 아시아-대양주 2차예선에서 뉴질랜드[1] 에게 발목 잡혀서 2위결정 플레이오프(싱가포르에서 개최)에서 뉴질랜드에게 져서 탈락하였다. 한편 대한민국은 쿠웨이트와의 경기에서 심판의 이해할 수 없는 판정으로 아쉽게 월드컵 진출에 실패하였다.
FIFA 월드컵 사상 최초로 6개 대륙 연맹에서 모두 본선출전국을 낸 대회이기도 하다. 이후 이 기록은 2006 FIFA 월드컵 독일과 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공화국이 이어받는다.
- 유럽 : 13장
1조 : 서독/오스트리아 진출
2조 : 벨기에/프랑스 진출
3조 : 소련/체코슬로바키아 진출
4조 : 헝가리/잉글랜드 진출
5조 : 유고슬라비아/이탈리아 진출
6조 : 스코틀랜드/북아일랜드 진출
7조 : 폴란드 진출
2조 : 벨기에/프랑스 진출
3조 : 소련/체코슬로바키아 진출
4조 : 헝가리/잉글랜드 진출
5조 : 유고슬라비아/이탈리아 진출
6조 : 스코틀랜드/북아일랜드 진출
7조 : 폴란드 진출
- 남미 : 3장
1조 : 브라질 진출
2조 : 페루 진출
3조 : 칠레 진출
2조 : 페루 진출
3조 : 칠레 진출
- 북중미/카리브 : 2장
온두라스/엘살바도르 진출
- 아시아/오세아니아 : 2장
쿠웨이트/뉴질랜드 진출
- 아프리카 : 2장
알제리/카메룬 진출
3. 경기장
스페인 전국 14개 도시의 17개 경기장이 대회를 개최했다. 이는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에서 두 나라가 20개 도시의 20개 경기장에서 대회를 개최하기 전까지 가장 많은 도시와 많은 경기장에서 개최한 대회였다. 가장 많은 경기를 개최한 경기장은 바르셀로나의 캄 노우로 준결승전을 비롯해 5경기를 개최했다. 바르셀로나는 8경기를 개최해 이 대회에서 가장 많은 경기를 개최한 도시이기도 했는데, 에스타디 데 사리아도 3경기를 개최기 때문이었다. 그 다음으로 많은 경기를 개최한 도시는 마드리드로 총 7경기를 개최하였다.
대회 개최 조직위가 많은 도시를 개최 도시로 선정한 이유는 6개 조의 선수단과 팬들의 이동 부담을 줄이기 위한 조취였다고 밝혔다. 1차 조별 리그의 1조는 갈리시아 지역의 비고와 코루냐, 2조는 아스투리아스 지역의 히혼과 오비에도, 3조는 발렌시아 남부 지역의 엘체와 알리칸테,(아르헨티나와 벨기에 경기는 예외적으로 개막전이기 때문에 캄 노우에서 진행되었다) 4조는 북부 바스크의 빌바오와 카스티야이레온의 바야돌리드에서, 개최국 스페인이 편성된 5조는 발렌시아와 아라곤의 사라고사에서, 6조는 안달루시아의 세비야(산체스 피스후안에서 한 경기, 베니토 비야마린에서 두 경기)와 말라가에서 진행되었다. 또한 1차 조별 리그 경기는 빌바오나 히혼 같은 북부 지역의 경우 오후 5시에, 세비야나 말라가 같은 남부 지역의 경우에는 밤 9시에 경기를 시작해 최소 32도에 달하는 스페인의 혹서기에 맞출 수 있도록 일정을 잡았다.
2차 조별리그부터는 마드리드, 바르셀로나, 세비야, 그리고 알리칸테(개막전을 치르지 못한 보상으로 3위 결정전을 개최했다)에서만 개최되었다. A조와 C조는 바르셀로나의 캄 노우와 에스타디 데 사리아에서, B조와 D조는 산티아고 베르나베우와 비센테 칼데론에서 각 조별로 한 경기장에서 진행되었다.
두 준결승전은 각각 바르셀로나의 캄 노우와 세비야의 산체스 피스후안에서 진행되었고, 3위 결정전은 알리칸테에서 열렸으며, 마드리드의 산티아고 베르나베우에서 열린 결승전을 끝으로 대회의 막을 내렸다.
- 에스타디오 산티아고 베르나베우 (Estadio Santiago Bernabéu) - 80,800명 수용. 마드리드
- 에스타디오 비센테 칼데론 (Estadio Vicente Calderón)- 65,000명 수용. 마드리드
- 캄 노우 (Camp Nou) -93,053명 수용. 바르셀로나
- 에스타디 데 사리아 (Estadi d saria)[2] - 43,667명 수용. 바르셀로나
- 에스타디오 라몬 산체스 피스후안 (Estadio Ramón Sánchez Pizjuán) - 56,000명 수용. 세비야
- 에스타디오 베니토 비야마린 (Estadio Benito Villamarín) - 52,500명 수용. 세비야
- 에스타디오 데 발라이도스 (Estadio de Balaídos) - 31,800명 수용. 비고
- 누에보 에스타디오 (Nuevo Estadio los Pajaritos) - 39,000명 수용. 엘체
- 에스타디오 데 리아소르 (Estadio de Riazor) - 34,617명 수용. 레코루냐
- 엘 몰리논 (Estadio El Molinón) - 25,885명 수용. 히혼
- 에스타디오 카를로스 타르티에레 (Estadio Carlos Tartiere) - 20,000명 수용. 오비에도
- 에스타디오 호세 리코 페레스 (Estadio José Rico Pérez) - 30,000명 수용. 알리칸테
- 에스타디오 산 마메스 (Estadio San Mamés)[3] - 40,000명 수용. 빌바오
- 에스타디오 호세 소리야 (Estadio José Zorrilla) - 30,500명 수용. 바야돌리드
- 에스타디오 데 메스타야(Estadio de Mestalla) - 49,092명 수용. 발렌시아
- 에스타디오 데 라 로마레다(Estadio de La Romareda) - 34,596명 수용. 사라고사
- 에스타디오 라 로살레다(Estadio La Rosaleda) - 45,000명 수용. 말라가
4. 1라운드
4.1. 시드 및 포트 배정
- 시드 배정국: 스페인 (개최국), 아르헨티나 (전 대회 우승국), 브라질, 잉글랜드, 이탈리아, 서독
- A포트: 오스트리아, 체코슬로바키아, 헝가리, 폴란드, 소련, 유고슬라비아
- B포트: 벨기에, 프랑스, 북아일랜드, 스코틀랜드, 칠레, 페루
- C포트: 알제리, 카메룬, 쿠웨이트, 엘살바도르, 온두라스, 뉴질랜드
4.2. 최종 조 편성
조편성은 다음과 같다. 조 순위대로 나열. 굵은 글씨는 2라운드 진출.
- 1조 : 폴란드, 이탈리아, 카메룬, 페루
- 2조 : 서독, 오스트리아, 알제리, 칠레
- 3조 : 벨기에, 아르헨티나, 헝가리, 엘살바도르
- 4조 : 잉글랜드, 프랑스, 체코슬로바키아, 쿠웨이트
- 5조 : 북아일랜드, 스페인, 유고슬라비아, 온두라스
- 6조 : 브라질, 소련, 스코틀랜드, 뉴질랜드
4.3. 1조
- 이탈리아 0 : 0 폴란드
- 페루 0 : 0 카메룬
- 이탈리아 1 : 1 페루
- 폴란드 0 : 0 카메룬
- 폴란드 5 : 1 페루
- 이탈리아 1:1 카메룬
이 조에서 승부가 난 경기라고는 폴란드 대 페루전이 유일했고 나머지는 죄다 비겼다. 이로 인해 이탈리아는 3무를 거두는 바람에 같은 3무인 카메룬과 다득점까지 따지는 상황이 발생했고 어렵게 2라운드에 진출했다.
4.4. 2조
- 서독 1 : 2 알제리
- 칠레 0 : 1 오스트리아
- 서독 4 : 1 칠레
- 알제리 0 : 2 오스트리아
- 알제리 3 : 2 칠레
- 서독 1 : 0 오스트리아
최종전 서독 : 오스트리아 경기에서 양 팀간 '''승부조작성''' 경기로 크게 물의를 빚었다. UEFA 유로 1980 우승국으로 그 라이벌이라고는 마리오 켐페스와 디에고 마라도나를 동시에 보유한 디펜딩 챔피언 아르헨티나밖에 없다는 평가를 들은 서독이었지만 서전부터 처녀출전한 알제리에게 1-2로 쳐발려버렸다. 이후 서독은 칠레를 상대로 대승을 거두었고 알제리는 오스트리아에게 패했다. 그 이후 알제리가 칠레를 상대로 요상하게 고전하면서 겨우 이겼는데 이렇게 해서 알제리의 경기가 모두 끝난 시점에서 알제리는 2승 1패. 서독은 1승 1패(알제리에게 당함), 오스트리아는 2승이었다. 이때 서독이 오스트리아를 2점차 이하의 점수차로 이기면 서독이 알제리를 밀어내고 상대팀인 오스트리아와 사이좋게 2라운드에 나갈 수 있었기 때문에 양 팀은 경기 초반 서독의 득점이 있은 후 패스돌리기로 일관하여 시간보내기에 급급했다. 당연히 경기장에서는 관중들의 야유가 터져나왔고, 서독과 오스트리아는 국제적인 비난을 면치 못했으며 서독에선 내 조국이 이런 더러운 짓을 하니 정말 못살겠다고 자살한 사람까지 있었다. 프랑스 당시 대표팀 감독은 "올해 노벨평화상은 오스트리아와 서독 축구대표팀에게 줘야 한다." 라고 대놓고 인터뷰에서 두 나라를 깠다. 알제리는 FIFA에 공식적으로 항의했으나 끝내 받아들여지지 않아 쓸쓸히 짐을 싸야 했다. 이 문제로 인해 다음 대회, 정확히는 UEFA 유로 1984부터 조별 리그의 마지막 경기는 동시에 열린다는 원칙이 세워진다. 이것을 '''히혼의 수치'''라고 한다.[4]
4.5. 3조
- 아르헨티나 0 : 1 벨기에
- 헝가리 10 : 1 엘살바도르
- 아르헨티나 4 : 1 헝가리
- 벨기에 1 : 0 엘살바도르
- 벨기에 1 : 1 헝가리
- 아르헨티나 2 : 0 엘살바도르
디펜딩 챔피언 자격으로 출전한 아르헨티나가 포클랜드 전쟁의 패전으로 인해 실의에 빠진 나머지 모든 경기를 울며불며 뗑깡을 부렸다. 포메이션이고 나발이고 간에 하프타임때도 계속 울기만 했다.[5] 그러다가 벨기에에게 일격을 먹고 약체인 헝가리와 엘살바도르를 상대로도 고전끝에 겨우 이겨서 2라운드에는 간신히 진출했다. 참고로, 헝가리는 엘살바도르를 상대로 '''10:1'''[6] 이라는 오세아니아 지역예선에서나 볼법한 괴이한 점수로 대승을 거두었다. 정작 승점에서는 운없게도 벨기에와 아르헨티나에 뒤쳐져서 2라운드 진출에 실패했지만. 사실 헝가리의 입장에서 아르헨티나는 실력은 엄청 쎘지만 경기를 뛰고자 하는 의욕을 잃은 팀이라 해볼만했지만 결국 졌다.
4.6. 4조
- 잉글랜드 3: 1 프랑스
- 체코슬로바키아 1 : 1 쿠웨이트
- 잉글랜드 2 : 0 체코슬로바키아
- 프랑스 4 : 1 쿠웨이트
- 프랑스 1 : 1 체코슬로바키아
- 잉글랜드 1 : 0 쿠웨이트
프랑스-잉글랜드 경기 당시, 잉글랜드 훌리건들이 살아있는 수탉을 가져와 경기 도중 모가지를 잘라 피를 뿌리는 짓을 저질렀다. 비난 속에 이들은 수탉은 프랑스 축구 상징, 잉글랜드는 사자니 꼬우면 니들도 사자 목을 자르던가라는 개소리를 했다.[7] 잉글랜드는 예선에서 프랑스를 이기고 조 1위로 2라운드에 올랐으나 2라운드 조예선에서 서독과 스페인에게 무재배를 거두면서 탈락한 반면, 프랑스는 4강까지 진출했다. 그 훌리건들은 국제적 비난 속에 잉글랜드로 돌아오자마자 쇠고랑을 찼으며 FIFA에선 경기장에서 살아있는 동물을 학대하거나 죽여 피를 뿌리는 행위는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금지하며 해당국에도 불이익을 준다라는 규정까지 만들어야 했다.
쿠웨이트와 프랑스의 경기에서, 3대1로 프랑스가 이기고 있는 상황에서 프랑스가 공격하고 있을 때 관중석의 누군가가 휘슬을 불었고, 이를 쿠웨이트 선수들이 심판의 휘슬로 착각하고 동작을 멈추자 프랑스는 손쉽게 4번째 득점을 얻었다. 이에 경기를 지켜보던 쿠웨이트 축구협회장 파하드(Fahad) 왕자가 경기장에 난입해 골을 무효로 할 것을 요구했고 당시 주심이었던 소련국적의 미로슬라프 스투파르(Miroslav stupar)는 파하드 왕자의 요구를 받아들여서 큰 파장을 낳았다.
4.7. 5조
- 스페인 1 : 1 온두라스
- 유고슬라비아 0 : 0 북아일랜드
- 스페인 2 : 1 유고슬라비아
- 온두라스 1 : 1 북아일랜드
- 온두라스 0 : 1 유고슬라비아
- 스페인 0 : 1 북아일랜드
개최국 스페인이 유고슬라비아와 승점이 같았으나, 다득점에 앞서 간신히 2라운드에 진출하였다. 이는 월드컵 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나마 스페인의 저 1승도 편파판정[9] 덕에 따낸 떳떳하지 못한 승리였다.
4.8. 6조
- 브라질 2 : 1 소련
- 스코틀랜드 5 : 2 뉴질랜드
- 브라질 4 : 1 뉴질랜드
- 소련 3 : 0 뉴질랜드
- 소련 2 : 2 스코틀랜드
- 브라질 4 : 0 스코틀랜드
브라질은 지쿠, 소크라치스, 토니뉴 세레주, 호베르투 파우캉. 이른바 '''황금의 사중주'''를 내세워 일찌감치 3승을 챙기고 2라운드에 진출했다. 그러나...
5. 2라운드
조편성은 다음과 같다. 조 순위대로 나열. 굵은 글씨는 4강 진출.
- A조 : 폴란드, 소련, 벨기에
- B조 : 서독, 잉글랜드, 스페인
- C조 : 이탈리아, 브라질, 아르헨티나
- D조 : 프랑스, 오스트리아, 북아일랜드
5.1. A조
- 폴란드 3 - 0 벨기에
- 벨기에 0 - 1 소련
- 폴란드 0 - 0 소련
골 득실차로 인해 폴란드는 비기기만 해도 4강에 진출한다. 그리고 실제로 폴란드와 소련이 득점없이 비겨 폴란드가 4강에 진출했다.
5.2. B조
- 서독 0 - 0 잉글랜드
- 서독 2 - 1 스페인
- 스페인 0 - 0 잉글랜드
잉글랜드가 4강에 가려면 스페인을 2점 차 이상으로 이겨야만 했다. 하지만 스페인이 잉글랜드의 발목을 제대로 잡았다. 그 결과 서독이 4강에 진출했다. 여담으로 스페인이 2010 월드컵에서 우승한 현재 기준으로는 바로 밑의 C조와 마찬가지로 전원 월드컵 우승 유경험팀이다.
5.3. C조
- 이탈리아 2 - 1 아르헨티나
- 아르헨티나 1 - 3 브라질
- 이탈리아 3 - 2 브라질
'''유사이래 최악의 죽음의 조''' 뭐 이딴 조가 다 있나 싶은데 조편성된 구성원 전체가 '''월드컵 우승 유경험팀'''이라는 해괴한 편성이었다. 게다가 아르헨티나는 디펜딩 챔피언에 브라질은 우승 3회, 이탈리아는 우승 2회의 강팀들이다. 여기 편성된 팀들은 딴조 어딜 가든 조 1위를 할 그런 강팀들뿐이었다.
대진표가 이지경이 된 건 이탈리아는 단 1승도 못한 채 올라오고 아르헨티나는 이기고도 남을 벨기에에게 덜미를 잡혀서 이렇게 된 것이다. 이전 월드컵에서는 이런 극악의 조편성이 없었으며 훗날 월드컵에서도 이렇게 엄청난 조편성이 된 건 2014 FIFA 월드컵 브라질 D조의 우루과이-이탈리아-코스타리카-잉글랜드 밖에 없다.
아르헨티나가 두 경기 모두 패했다곤 하지만 다른 조의 어지간한 팀들을 압도할 강팀이었다. 그런데도 이탈리아가 브라질과 아르헨티나를 모두 이기는 괴력을 발휘하면서 4강에 진출했다. 이 중 브라질과의 경기에서 승부조작 논란으로 인해 한동안 그라운드를 떠났던 풍운아 파올로 로시의 해트트릭이 있었다.[11]
이탈리아가 올라가긴 했으나 아르헨티나나 브라질도 막강한 전력을 보유하고 있었지만 결국은 이탈리아가 4강에 진출 하였고 ''결국은 이탈리아가 이 월드컵을 우승했다.''
참고로 이탈리아에 패한 브라질은 경기 후 2명이 자살하고 5명이 심장마비로 사망하면서 충격에 빠졌다. 이를 '''데 사리아 참사'''라고 하며 32년전에 있었던 마라카낭의 비극과 32년 후에 있을 미네이랑의 비극과 더불어 브라질의 3대 잔혹사로 불린다.[12] 브라질 대표팀의 3대 비극로 기억될 '미네이랑의 비극'..."나머지 참사들은 뭘까?"
5.4. D조
- 오스트리아 0 - 1 프랑스
- 오스트리아 2 - 2 북아일랜드
- 북아일랜드 1 - 4 프랑스
이 조에서는 프랑스만 2번 모두 이기고 오스트리아와 북아일랜드는 비겼다.
6. 결선 토너먼트
서독과 프랑스와의 준결승에서는 후반 15분 서독 골키퍼 하랄트 슈마허와 프랑스의 파트리크 바티스통의 충돌 사고가 있었다. 플라티니의 스루패스를 경합 상황에서 바티스통이 달려들면서 슈팅했지만 오른쪽으로 빗나갔고 직후 뒤늦게 뛰어나온 슈마허의 엉덩이와 바티스통의 얼굴이 부딪쳤다. 바티스통은 이 충돌로 의식을 잃고 교체되었지만(게다가 이가 두 개 나가고 갈비뼈 세 개에 금이 갔다) 파울로 간주되지는 않았다.
하랄트 슈마허는 승부차기에서 눈부신 선방을 보이며 승부차기 끝에 프랑스를 꺾고 팀을 결승에 올렸지만 결승전에서는 3대1로 이탈리아에게 패하였고, 1986년 멕시코 월드컵에서도 결승에서 디에고 마라도나가 이끄는 아르헨티나에게 3대2로 패하여 결승을 두번이나 갔음에도 불구하고 우승컵을 안지 못하였다.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 때 서독 축구 국가대표팀이 우승하긴 하였으나, 그는 자서전 때문에 감독인 프란츠 베켄바워와 사이가 안 좋아져 주전은 물론 2군 명단에조차도 못 들어갔다.[13] 은퇴 후에는 축구 감독을 하였는데, 성적 부진을 이유로 '''경기 하프타임 도중에''' 경질당하는 굴욕을 겪기도 했다.
7. 우승
[image]
8. 결과
골든볼 - 파올로 로시 (이탈리아)
실버볼 - 호베르투 파우캉 (브라질)
브론즈볼 - 카를하인츠 루메니게 (서독)
득점왕 - 파올로 로시 (이탈리아)
골든글러브(야신상) - 디노 조프 (이탈리아)
신인상 - 마누엘 아모로스 (프랑스)
페어플레이상 - 브라질
[1] 첫 월드컵 본선 진출. 리키 허버트가 뉴질랜드 국가대표로 첫 월드컵 본선 참가했고, 두번째 월드컵(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뉴질랜드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지휘하였다.[2] 1997년 철거.[3] 현재의 산 마메스는 2013년 구(舊) 산 마메스를 철거한 자리에 다시 세운 것이다. 둘 다 홈팀은 아틀레틱 클루브이다.[4] 여담으로 前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감독 울리 슈틸리케가 선수 시절 이 경기에서 스위퍼로 출전했었다. 그런데 슈틸리케는 사실 팀의 방침대로 움직였을 뿐이고 주동자는 '''이 경기에서 골을 넣은 호어스트 흐루베슈'''였다.[5] 이들은 포클랜드전 패배 소식을 아르헨티나가 아니라 스페인에 와서야 알았다. 아르헨티나에서 이겼다고 뻥카를 쳤던 탓이다.[6] 이 스코어는 1954 FIFA 월드컵 스위스에서 한국이 기록한 최다 점수 패배 타이 기록. 당시 한국은 헝가리에 0:9로 패했다.[7] 그런데 사실 잉글랜드의 삼사자 문장은 원래 프랑스 노르망디 지방의 문장인데, 노르망디 귀족이었던 윌리엄 1세가 영국왕에 오르면서 사용하게 된 것이니만큼, 프랑스인들 입장에선 더더욱 환장할 노릇.[8] 당시 메스타야 경기장의 명칭[9] 0-1로 지던 상황에서 페널티 박스 바깥에서 유도한 파울을 심판진이 페널티 킥으로 판정하고, 로베르토 로페스 우파르테의 킥이 홈런(...)이 되자 이번엔 골키퍼 파울을 선언하며 재시도 기회를 주고, 2차 시도에서 후아니토가 간신히 성공(...)[10] RCD 에스파뇰의 구 홈구장[11] 특히 브라질에는 '''황금의 사중주'''라 불리는 지쿠, 소크라치스, 토니뉴 세레주, 호베르투 파우캉이 있었고, 조별리그부터 승승장구를 치고 올라왔으니 충격이 더 클 수 밖에 없었다.[12] 잔혹사이긴 해도, 미네이랑의 비극에 비하면 심각한 수준은 아니었다. 하지만, 브라질이 월드컵에서 유일하게 먹힌 해트트릭이었다.[13]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 당시 골키퍼는 보도 일그너와 안드레아스 쾨프케였다. 물론 주전은 일그너.